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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병옥 WCD Korea 회장 [나의 삶, 나의 길]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듯 여성의 장점 살리려했죠”

admin 2019-09-25 23:27:23 조회수 1,258

손병옥 WCD Korea 회장 [나의 삶, 나의 길]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기듯 여성의 장점 살리려했죠”


2017-06-19

유리천장’ 깬 여성임원 1세대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

 

 

손병옥 푸르덴셜생명 회장이 퇴임식을 하루 앞둔 14일 서울 강남구 푸르덴셜타워 앞에서 웃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일하는 여성들에게 포기하지 말라고, 절대로 그만두지 말라고 얘기해주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런 분들에게 꼭 기회를 줬으면 좋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40여년의 커리어를 마치는 손병옥(65) 푸르덴셜생명 회장의 당부다. 그는 네 번의 경력단절을 겪고도 금융업계에서 오너 일가를 제외한 최초 여성 사장부터 최초 회장까지 ‘최초’ 타이틀을 석권하다시피 하며 유리천장을 깬 여성 임원 1세대다. 국내 여성임원모임인 ‘WIN’의 초대 회장이자 세계여성이사협회(WCD) 한국지부 초대 회장 등 ‘초대’ 역시 빠지지 않는 수식어다. 회사 생활 못지않게 여성 인재들의 임원 진출을 위해 지원과 수고를 아끼지 않은 덕에 생긴 수식어다.


그런 손 회장이 이달 말 푸르덴셜생명 회장직에서 물러나며 43년 직장생활의 마침표를 찍는다. 퇴임식을 하루 앞둔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르덴셜타워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손 회장은 “오래전부터 축하받으며 떠나는 모습을 그려왔는데 그럴 수 있어서 행복하다. 정말 축하받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손 회장 집무실과 자택에는 며칠째 퇴임 축하 꽃바구니와 축하 메시지가 이어지고 있다.
“‘멋지다’는 문자를 제일 많이 받은 것 같아요. 가장 인상 깊은 건 ‘보람 있고 멋지게 살아오셨네요. 그리고 따뜻하게’라는 메시지였는데 따뜻하다는 말이 참 감사하죠.” 
그가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한 1974년 당시만 해도 여성은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두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콘크리트 철벽 같은 사회적 편견과 장애물을 뛰어넘은 여성들에겐 대개 ‘독하다’, ‘마녀 같다’는 꼬리표가 붙었다. 하지만 손 회장은 온화한 성품과 여성스러움을 애써 숨기려 하지 않는다

 

“지난 세월 한국기업에서 독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분위기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직장인이기 전에 여성으로서 장점을 살리려고 꽤 노력했어요. 임원 회의에 들어가서 모두 시커먼 옷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으면 ‘모두 화나셨나봐요. 웃으며 일합시다’라며 편한 회의 분위기를 유도합니다. 꼭 남자들처럼 술 많이 마시고 드센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없어요.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깁니다.” 

손 회장이 조직에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승승장구하는 동안 거센 견제나 질투를 받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아래위로 두터운 신임과 원만한 인간관계를 꼽을 수 있다. 인사·감사 담당 차장 시절 면전에서 “여자가, 그것도 남편도 있고 애도 있는 여자가 왜 이렇게 설치냐”는 말에 “점심 한 번만 먹자”며 계속 졸라 결국 그의 고민상담까지 해주는 관계로 바꿔놓기도 했다. 항상 겸손하고 남을 배려하는 장점을 무기로 조직 내 껄끄러운 관계를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오래 일하려면 지식이 많은 것보다 지혜로워야 합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더더욱 그렇고요.”

하지만 두 딸을 가진 워킹맘으로서 일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도 있었다. 여느 워킹맘들처럼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맞출 수 없을 때였다고 한다. 

“1986년 12월 둘째가 네 살 때였어요. 돌보미가 종교활동 때문에 매주 수요일 일찍 퇴근하는데 하필 그날 중요한 회의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30분만 더 있어달라고 전화로 사정하고 부랴부랴 퇴근했죠. 그런데 경비실을 지나치는데 펄펄 끓는 양동이 옆에 어린 딸이 혼자 앉아있는 겁니다. 물이 엎질러지기라도 했다면…. 심장이 두근대는데 아이가 놀랄까봐 내색도 못하고 조용히 데리고 나와 목놓아 울었죠. 그날 그 경비실에 있던 ‘순찰중’이라는 팻말과 시뻘건 양동이, 그리고 딸이 입고 있던 옷, 아이의 표정까지 화석처럼 가슴에 박혀 있어요.”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이사와 부장의 눈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후배들에게도, 워킹맘인 딸들에게도 “절대 그만두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언제나 우선순위는 가정이었다고 말한다. 그가 최초 타이틀을 달았던 부사장직에 오래 머물렀던 것도 당시 암투병을 하던 남편(故 이석영 전 중기청장)을 위해서였다.

“일과 가정 둘 중 하나만 해야 한다면 저는 집으로 갑니다. 하지만 그러지 않기 위해 노력했고 주변에서, 회사에서, 사회에서 도와줘야 하죠.” 

남편과 사별한 후에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기회를 주저없이 잡았다. 2007년 내외부 공모를 통해 치열한 경쟁을 거쳐 뽑는 사장직에 도전한 그는 푸르덴셜생명 글로벌 지사를 통틀어 첫 여성 사장이 됐다.
“사장 자리가 났는데 한번 도전해보겠냐고 하길래 ‘예스’라고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것 같아요. 조선, 철강 같은 제조업이라면 쉽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금융회사는 고객과의 소통, 공감 등이 중요하고 푸르덴셜이 가족적이고 윤리적인 문화가 강해 가능했었던 같습니다.” 

WIN(Women in INovation) 창립에 나선 것도 그 즈음이다. 당초 대기업과 외국계 기업 여성 임원들이 서로 위로하고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결성한 사교 모임을 여성 임원 양성을 위한 사단법인으로 만든 것이다. 손 회장은 임원들과 함께 사재를 털어 설립기금 3000만원을 댔고, 초대회장을 맡아 10년간 역임했다.
“차장, 부장 등 중간관리자급 여성들이 사표까지 써놓고 WIN 모임에 나왔다가 마음을 돌렸다고, 선배들처럼 임원이 되고 싶다고 말할 때 가장 보람 있어요.” 

손 회장은 지난 2월 WIN 회장직을 황지나 한국GM 부사장에게 넘겨주고, 지난해 9월부터 WCD(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지부 초대회장으로 활약하고 있다. WCD의 목표는 기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의 여성 비율을 30%까지 올리는 것. 정권 초기 여성 30%, 임기 내 남녀 동수 내각을 목표로 하고 있는 문재인정부의 정책방향과 같다.  

“일본은 아베 정권이 들어선 후 엄청난 변화가 생겼습니다. 성평등, 여성의 사회활동 등에서 우리나라와 함께 최하위를 다퉜는데 최근 일본 대기업 여성 임원이 6.9%(한국은 2.4%)까지 올라갔습니다. 최고 결정자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죠. 그런 면에도 우리나라도 지금 매우 고무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인재를 발탁하고 싶어도 쓸 사람이 없다거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기업들의 푸념에 손 회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조금 부족해 보이더라도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여성을 적극 기용해야 합니다. 외국계기업의 중요한 경영원칙 중 하나기도 하죠. 1% 부족해도 다양성 속에서 새로운 발전의 가능성이 나올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그동안 써주지 않아 (능력)발휘가 안 되는 겁니다. 아무리 부모한테 잘하라고 해도 자식한테 더 잘하듯이 남녀평등 역시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손 회장은 금융업계뿐 아니라 일하는 많은 여성들의 롤모델로 꼽힌다. 그런 그에게도 귀감이 됐던 사람이 있을까. 


“2000년 초반 남편과 다보스포럼에 갔다가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 패커드 최고경영자(CEO)를 보게 됐어요. 짧은 커트머리에 위아래 빨간색 수트를 입고 카리스마 넘치게 연설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에도 저런 여성이 있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이경숙 아산나눔재단 이사장이 계시더군요. 변화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는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살지만 ‘유리천장’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벽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에게도 있습니다. 유리천장보다는 내 마음의 벽이 더 클지도 모릅니다. 마음의 벽부터 거둬내고 끝없이 도전해야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도 열정이 넘쳐 경영일선에 물러선다는 것이 아쉬울 법도 하지만, 퇴임 후 삶에 대한 기대가 더 커보였다.
“‘일을 좀 더 열심히 했어야지’ 하는 미련은 없어요. 좀더 많은 사람과 가까이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제일 커요. 이제 그동안 못한 여행도 하고 친구들도 만나고, 일하는 딸들 위해 손주들도 봐주렵니다. 그리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제 경험을 나누면서 여성들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계속 노력할 겁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손병옥 회장은 
 
△1952년 부산 출생 △경기여고, 이화여대 영문과, 서강대 경영대학원, 미 조지 메이슨 대학원 석사 △체이스맨해튼 뱅크 서울지사 △미 부르클린 세이빙 뱅크 △크로커 내셔널 뱅크 서울지사 △미들랜드 뱅크 서울지사 △HSBC 서울지사 △푸르덴셜생명보험 사장 △푸르덴셜생명보험 회장 △재정경제부 금융발전심의회 분과의원 △Make A Wish 국제재단 최초 한국인 이사, 한국재단 이사장 △국민훈장 목련장 수상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이사 △국가브랜드위원회 위원 △금융위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 위원 △WIN 초대회장 △이화여대 자문위원회 위원, 겸임교수(현) △WCD 한국지부 대표(현) △푸르덴셜 사회공헌재단 이사장(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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